인생의 모든 순간이 그렇지만 결혼은 특히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것을 다 하자니 돈이 문제고, 안 하자니 나중에 후회할 것 같고.
무엇을 빼고 무엇을 넣어야 할지, 다 겪어본 내 입장에서도 참 곤란한 문제이긴 하다.
그렇다면
프러포즈는
꼭 해야할까요?
"해라"
왜냐,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한다.
다이아반지? 지금 돈이 없으면 뭐 나중에라도 사줄 수 있다.
명품가방? 이것도 조금씩 돈 모아서 나중에 쪼그만한 거 하나라도 사줄 수 있다.
호텔이벤트? 아 뭐 살면서 언젠가는 한 번 할 수도 있겠지.
그치만, 프러포즈는 결혼하기 "전"에만 할 수 있다.
비싼 선물이 없으면 프러포즈가 아닌가? 아니다.
꼭 호텔에서 해야만 프러포즈인가? 아니다.
프러포즈에서 제일 중요한 준비물은 비싼 선물이 아니라, "상대를 배우자로 맞이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다.
그냥 나이가 차서, 서로 적당한 조건이라서, 뭐 대충 흠잡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기 위해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
그게 청혼이지 별 다른 게 청혼인가.
내 남편의 프러포즈.
사실 남편의 프러포즈는 좀 모냥이 빠졌다.
내 나름대로 프러포즈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우리 남편이 평소에 눈치가 별로 없고 성격도 둔감한 편이라 A to Z 줄줄이 읊어주지 않는 이상 제대로 실현될 리가 없었기 때문에(엎드려 절받기는 싫었다), 나는 남편에게 딱 하나의 조건만 지킬 것을 당부했다.
"부탁인데 나한테 먼저 들키지만 마. 서프라이즈로 해줘."
내 입장에서는 크게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성격이 무던한 우리 남편 입장에서는 예민하고 눈치 빠른 나를 속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를 속이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한다.ㅋㅋ
그날도 여느 다른 날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했다.
더운 여름이라 몇번 가봤던 시원한 카페 안에서 커피를 시키고, 브런치를 시켜서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자꾸 남편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꾸 루프탑에 구경을 가잔다.
"3층에 가볼래?"
"왜?"
"그냥, 구경하러."
"싫어. 더워."
"아니 그래도..."
"아 이거나 빨리 먹어, 식는다. 더워 죽겠는데 뭔 루프탑이야, 안 가."
"...;;;"
이미 한번 와봤던 카페라 3층에 별다른 게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날도 더운 날 에어컨도 안 나오는 옥상에 뭘 자꾸 올라가자고 난리인지.
결국 우리남편은 나를 옥상에 올려 세우지 못했다.ㅋㅋ
그리고 카페에 도착한지 한 시간이 넘도록 시원한 1층에서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경치나 감상했다.
내가 워낙 요지부동이니 비밀스럽게 3층을 가는 건 포기했는지, 잠깐 차에 갔다온다고 나간 사람이 손에 뭘 들고 나타났다.
"뭐야?"
"선물."
"에? 뭔데?"
남편이 나에게 내민 것은 말린 꽃을 넣어 만든 작은 유리돔이었다.
프러포즈 선물이라고 했다.
그.... 내가 생각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ㅋㅋㅋ
평소 남편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어디냐 싶어서 가볍게 웃었다.
업체에 주문해서 배송받은 건 줄 알았는데, DIY 키트가 와서 하나하나 스스로 조립하고 풀칠했다고 하니 조금 감동이었다.
(큰 감동은 아니었음.)
"고마워ㅋㅋ 이게 프러포즈야?"
"아, 근데... 3층에 가야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서 자꾸 더워죽겠는데 옥상에 가자했구나~? 옥상에 뭐있는데?"
"아니 뭐 없긴 한데..."
"가보자ㅋㅋㅋ"
도대체 3층에 뭔짓을 했길래 3층에 가자고 하나, 하면서 따라갔는데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아무것도 없다.
ㅋㅋㅋㅋ 하도 3층에 가자고 하길래 뭐 하다못해 뭐 풍선이라도 불어놨을 줄 알았는데, 걍 저번에 왔을때 봤던 옥상 그대로다.
그냥 카페 사장님이 키우는 화분만 잔뜩.
솔직히 속으로 뭐 어쩌라고 싶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휴대폰으로 이승기의 '결혼해줄래'를 틀면서 무릎꿇고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가?ㅋㅋㅋㅋㅋㅋㅋ
보통 같으면 이쯤해서 눈물 흘리기 좋은 타이밍이지만 자기가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프러포즈 상황에 당황한 남편의 모습이 그냥 웃겼다.
우당탕탕ㅋㅋㅋㅋ
노래를 마친 남편이 내게 건넨 것은 반지 상자였다. 열어보니 다이아 반지가 들었다.
근데 이거 아직 제작 중이라서 찾아올 때가 안 됐는데 무슨 반지지?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손에 끼는데 헐렁하다.
알고보니 진짜 내 반지는 제작 중이라, 주얼리 샵에 가서 가짜 다이아반지를 하나 빌려온 것이었다.(ㅋㅋㅋㅋ)
그러니까 실은 나는 가짜 반지로 프러포즈를 받은 셈이다.
다시말해, 비싼 호텔도 아니었고 비싼 선물도 없었고 (심지어 가짜 반지ㅋㅋ) 매끄러운 진행도 없었다.
진짜 나한테 "들키지만 않은" 프러포즈였다.
(갑자기 좋은 호텔에 가자고 하는 순간 눈치깔 거 같았다고 함ㅋㅋ)
뭐, 이것도 나름대로 저 사람 입장에선 힘들었겠지,
약간은 김빠진 콜라같은 감정으로 남편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는 순간,
허술한 프러포즈에 약간 서운했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졌다.
남편 셔츠가 땀으로 축축했던 것이다.
ㅠㅠ뿌엥..(파워T의 눈물 날 뻔한 순간)
안 해본 거 하느라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했으면 땀을 이렇게 삐질삐질 흘리나 싶어서 갑자기 안쓰럽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기대한만큼 결과물이 화려하고 멋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랑 살면 이 사람 때문에 우는 날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진짜 진심이면 된다고 말하는 거다.
비싸고 화려한 프러포즈가 아니어도, 더운 날 삐질삐질 흐르는 땀이 그 사람의 진심을 증명해줬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답프러포즈.
내 성에는 안 차지만 어쨌든 남편에게 프러포즈를 "서프라이즈"로 받기는 했으니,
나도 뭔가 답례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준비한 것이 '답프러포즈'였다.
웃긴 게ㅋㅋㅋㅋ 내가 받은 프러포즈는 내가 한 게 아니니까 나의 로망을 100퍼센트 실현할 수 없었지만,
내가 해주는 프러포즈는 내가 할 수 있으니까 나의 로망을 다 실현할 수 있었다.ㅋㅋㅋㅋ
1. 둘만의
2. 멋진 장소에서
3. 파티 장식을 하고
4. 준비한 선물을
5. 서프라이즈로
답프러포즈 날짜는 웨딩촬영(스튜디오)을 마친 날이었다.
웨딩촬영과 함께 곧 다가올 나의 생일을 축하할 겸, 여름 휴가겸 가까운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기로 했는데 그 때를 노린 것이다.
오랜 촬영에 지쳤다고 밑밥을 깔고, 난 좀 자고 있을테니 나가서 저녁거리를 좀 사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반강제)
남편이 배달을 시키면 안 되냐고 했는데 내가 여기 호텔이 너무 외진 곳이라 배달 시키면 배달비만 만원 넘게 받는다(팩트임), 그냥 픽업을 해오는 게 어떨까?하며 배달 심부름을 보내버렸다. 일부러 한 20분 넘게 걸리는 위치에 있는 맛집의 만두도 먹고싶다고 징징거렸다. 머리가 아프다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좀 자고 있을테니 천천히 다녀오라는 말에 남편은 걱정하며 약이라도 사올까? 하기에 약국에 들러서 진통제도 좀 사오라고 시켰다.ㅋㅋㅋㅋ
남편이 호텔 방을 나서자 마자 문을 걸어잠그고 후다닥 호텔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40분 남짓,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한다!
이까짓거 20분컷이지~ 그랬는데 생각보다 호텔의 천장이 너무 높았던 게 복병이었다.
파티커튼을 달아야 이거 뭐 풍선도 붙이고 할텐데... 유리창에 붙이면 예쁘지도 않고 테이프 자국도 남아서 싫은데...
결국 의자를 겹쳐서 밟고 어찌어찌 올라가 팔을 뻗어서 창틀에 커튼을 달긴 했다.(ㅠㅠ 키가 좀만 더 컸으면~)
이젠 호일풍선에 바람을 불 차례.
터질듯 빵빵하게 불어넣지 않으면 이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마지막 숨까지 다 불어넣어야 된다.
바람구멍을 단단히 막지 않으면 바람이 피슈웅 하고 빠지기 때문에 또 테이프를 빠짝 올려 붙여야 한다.
풍선을 다 불었으면 이제 실에 연결해서 설치를 해야하는데, 혼자하다보니 걸어두고 수평 맞추고, 다시 걸어두고 수평 맞추고 반복...
ㅠㅠㅠ 으..미친 내가 왜 이짓을...
드디어 마지막으로 선물 세팅!
대단한 건 아니지만, 워낙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아온 우리 남편.
앞으로 좋은 기운으로 돈 많이 벌어오라고(ㅋㅋ) 예쁜 지갑 하나를 샀다.
선물 샀을 때부터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결국 이 날이 오는구나.
(나중에 보니 중간에 남편이 한번 전화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휴대폰 볼 시간이 없었다. 근데 우리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진짜 어디라도 아파서 기절하듯 자고 있는 줄 알고 걱정돼서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약 40분 뒤,
치킨과 만두와 두통약을 들고 복귀한 남편이 마주한 것은
짜잔-
어때, 남편?
극 F 갬성인 우리남편, 이게 다 무어냐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사진찍고 동영상찍고ㅋㅋ 앞으로 말 잘 듣겠다(?)며ㅋㅋ
한참 호들갑을 떨더니 별안간 자기 프로포즈가 너무 초라하다면서 반성한다.
그래, 반성하고 다음부터는 좀 더 예쁘게 준비해주길 바라.
이때 받은 지갑도 여전히 신줏단지 모시듯 잘 간수하고 있다.
기대했던 돈은 많이... 벌진 못하고 있지만(?) 뭐 말은 잘 듣고 있으니 앞으로 잘 되겠지 뭐.ㅋㅋ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프러포즈라는 걸 여자들이 받고 남자들이 해주는 인식이 팽배하다보니, 남자들은 부담으로 느끼고 여자들은 괜한 비교를 하게 되는 거 같다. 부담스러운 감정도 인간적이고, 비교하거나 질투하는 것도 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는 비난하지 말자.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이미 결혼준비를 하고 있다는 건 서로 결혼할 의사를 확인한 건데, 굳이 뭐하러 또 프러포즈같은 걸 해서 돈을 쓰냐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래, 이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다.
그런데 내가 굳이 이런 절차를 추천한다고 하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준비하는 결혼의 과정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정식으로 진심을 담아
"나의 남은 인생을 함께 해주지 않을래?"라고
고백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사실 결혼준비를 하면서 많은 커플이 싸운다.
그 이유는 대체로 돈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이제부터는 현실이니까.
물론 나도 돈과 관련해서 엄청나게 싸웠다.
돈 때문에 싸운다 그러면 돈이 많으면 안 싸우고, 돈이 없는 상대를 비난해서 싸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그것이 많든 적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을 반복해야 한다.
이건 얼마고, 저건 얼만데, 또 이건 이게 문제고, 저건 저게 문제라서, 남들은 이렇게 하는데 우리 예산은 어쩌구저쩌구...
세상에 최저가는 있어도 최고가는 없기 때문에, 우리집 앞마당에서 석유가 솟지 않는 이상 제한된 여건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 순위가 다르면 당연히 의견충돌이 생길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똑같은 예산을 가지고 집을 구한다고 쳐도, 누구는 입지가 가장 중요할 수 있고 누구는 미래 자녀를 위한 학군지까지 고려할 수 있다.
즉, 인생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 때문에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을 놓치는 순간을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프러포즈를 준비하다보면 다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을 찾아서 돌아오게 된다.
아, 내가 이래서 얘랑 결혼할 마음을 먹었었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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